SugarCumPro_white and viscous gold, 아웃사이트 전시 포스터, 2020, 임진호 기획
SugarCumPro_white and viscous gold
글_김상진
미래는 마치 도박판 위에 엎어져 있는 곧 뒤집어질 카드와도 같다. 게임에 개입된 이들은 그 엎드린 불확실성의 민낯을 확인하기 위해 명치 깊숙이 무엇이 꺼져내리는 아득한 공황으로부터 역시 아득하게 뇌 속으로 퍼져가는 행복한 도파민의 몽환까지의 거대한 간극을 기꺼이 감수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 현기증 나는 불안 속에 간혹 두려움으로 질끈 눈 감은 자가 있었을지언정 대개의 시선은 결국 그 다가올 판도라의 상자로부터 도망치지 못한다. 홀린 듯 계속 그것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이 불안과 공황 속에 끊임없이 다가오는 극단적 두려움과 갈망하는 황홀함은 변증법의 활대를 끊어질 듯 팽팽히 당겨 우리의 미간으로 달려오려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더 멀리 더 강하게 추동한다. 분명 즐거움이 없다면 고통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통에서 발버둥 치는 나(너)를 상상할 수 없다면 주어지는 끝없는 즐거움은 지루함의 연옥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야바위꾼 마냥 사방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짊어지고도 도대체 미래로부터 눈을 떼지 못한다. (그래서 늘 사람들의 미래를 탄식하는 목소리 뒤로는 어떤 전율의 기대감이 가늘게 깔려 있는 것이다)
파리 만국박람회 전후로 떠오른 자연권에 기반한 이상적 이념주의나 미래주의자들이 바라본 기술 유토피아로의 격변적 충동과 설레임은 긍정과 부정 간의 극적 간극에도 불구하고 블레이드 러너가 그려낸 어둡고 축축한 화면 위를 헤매이는 파편화된 미래적 비극 혹은 조지오웰이 1984에서 선보인 강박적 디스토피아를 묘하게 닮아있다. 모든 것이 가능해졌기에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기대와 모든 것이 가능해졌기에 모든 것이 불행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사실 모든 것이 채워졌기에 모든 것이 공허해지는 미래의 두 얼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그 공허함은 근대적 인간의 소실을 카타르시스적으로 음미하는 죽음(소멸)에 관한 기대감이다.
이미 우리는 너무도 많은 빛으로 하얗게 날아가 버린 신의 방으로 진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사람의 말을 하는 신과 조우하는 미래에 대한 기억이다1. 모든 것이 가능한 낙원에서는 육체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질량을 갖지 않는 스테이크를 먹으며 행복감에 젖을 수 있다. 사람들은 지금 그 천국이 현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당도해 있음을 황홀하게 이야기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이들은 매일 손에 쥐지 않은 것들을 음미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과 교감하며 과거의 그들이 꿈꾸던 유토피아의 구조에 분명 한 걸음씩 가까워져 간다.
하지만 우리가 도착한 오늘 이곳은 오래된 근대주의자들이 예측한 지독한 상실이나 보상의 공간이 아니다. 이제 사람들은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닌 어떤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계측된 모든 미래를 예언하려 하는 도구(과학, 경제, 혹은 숫자로 이루어진 모든 것)적 세계의 강박적 압박 속에서 짜내어진 새로운 액체는 그런 낡은 결정론적 구분보다는 훨씬 미끄덩거리고 끈적이는 네트워크의 나선을 타고 끊임없이 흐른다. 이상해 보이겠지만 숫자는 이 점액의 한계조건이 아닌 존재조건이다. 이제 우리는 0과1을 통해 이것을 분비한다.
흘러넘치는 이 싱싱한 타액은 결코 확률의 예측에 목 졸린 시체가 아니다. 네트워크를 타고 사방에서 흘러나오는 이것은 오래된 권위의 목소리에 압도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을 유연히 회피하고 속이고 한없이 유희하며 새로운 잉태의 가능성을 널리 알린다. 이것들은 요란한 기척 없이 틈과 틈을 서슴없이 메꾸어 가는 점액질의 액체와도 같이 혹은 어느새 발밑에서 피어오르는 끈적한 수증기처럼 화면에 몰입된 이들의 땀구멍을 어디에서나 축축이 적시어 간다. 이것은 확률과 정합이 구축한 견고하고 높은 탑의 균열을 타고 흐르는 하얗고 끈적한 연금술사의 정액이며 바벨이 흘린 타액이다.
세계가 숫자와 경제의 자원으로 일원화될수록 본디 그곳의 서사를 지탱하던 것(종교, 인간, 생명, 윤리 등의 거대서사)들은 점차 빠르게,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미끄러져 떨어진다 (주로 상품과 통계의 형태로). 그리하여 이제는 종종 모든 것이 거꾸로 된다. 껍데기(광고)가 의미를 낳고 이미지는 데이터로 소실되며 도상의 도상이 의미 없는 언어를 중얼거림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동경의 백화점에 진열된 십자가에 못 박힌 산타클로스나 스코틀랜드 어느 집 뒷마당에 평화로이 놓여진 잘린 부처의 머리(옹박)과 같이 오늘날 죽은 의미의 송장(기표)들은 쉴 새 없이 미끄러운 네트워크 속으로 뿌려져지고 네트워크의 파편(혹은 상품)이 되어 사방으로 부유한다. 그렇지만 이제는 누구도 특별히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다들 아무렇지 않은 듯 새로운 자연 속을 살아간다.
중력을 잃은 채 부유하는 기표들은 폐기되지 않은 채 의미의 철저한 위계성과 불경의 사슬을 벗어나 끊임없이 충동적으로 맥락 없는 교미를 시도한다. 그것은 보통 별 의미 없음의 유혹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곳에는 반드시 죽은 표상들의 표본 사이로 흐르는 새로운 생명의 끈적임이 있을 것이다. 파편들은 이 끈적임 위에서 굴러다니며 제멋대로 결합하고 새로이 번식한다. 그것들은 우리가 키워갈 혹은 우리가 살아갈 새로운 숲의 싹을 틔워 나간다. 이 곳에서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조차 그곳을 부유하는 레트로적 기호 이상은 아니다 (혹은 낡은 이상주의자들을 모욕하기 위해서 사용될 것이다). 그러니 미래에 대한 낡디 낡은 과잉의 두려움과 환희는 잠시 접어두어도 좋다. 이제 새로운 인간은 무너진 기호의 늪이 틔워낸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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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디 신의 언어는 인간의 것과 다른 영역의 것이다. 그리하여 오직 선택된 영매들만이 계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었다.
2 공각기동대(1995)의 마지막 장면 - 성경 고전 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SugarCumPro _white and viscous gold
Text by Sangjin Kim (out_sight)
The future is like a faced down card on a poker table. To flip the card and confront the bare face of the prone uncertainty, gamers should submit to the gap between panic and fantasy; the faint panic that flushes something deep down the pit of the stomach, and the ecstatic fantasy of dopamine that faintly fans out over the brain. Even though some might tightly shut their eyes in the giddy anxiety, most of us fail to run from the approaching Pandora’s box. We stare at it like it possesses us.
Extreme fear and desiring ecstasy, which ceaselessly draw nearer in such anxiety and panic, drive further and make stronger the uncertainty of future rushing towards our forehead, by more tensely and tightly drawing the bow of dialectic. No pain, no pleasure, obviously. For, if I(you) couldn’t imagine myself(yourself) struggling in pain, endlessly given joy would be nothing but a purgatory of boredom. So carrying our wavering minds that wobble like that of a gambler, we still can’t help but stare at the future. (Therefore, there always lies a trembling expectation behind the voices lamenting the future.)
Sanguine idealism based on the natural rights that emerged around the Paris Exposition, and the cataclysmic impulse and thrill towards the techno-utopia from the Futurists’ point of view, oddly resemble the fragmented tragedy of future roaming about the dark and damp frames depicted in Blade Runner, or the compulsive dystopia introduced by George Orwell in his 1984; despite the gap between affirmation and negation. The anticipation that all problems will be solved since everything has become possible, and the fear that all shall be unfortunate since everything has become possible, are the two faces of the empty future where all shall be fulfilled. In the end, that emptiness is the expectation towards the death (extinction) that appreciates the disappearance of the modernistic humanity in catharsis.
Perhaps we are already entering a room of God, whitewashed with too much light. It is our memory of the future in which we encounter God in human figure speaking the language of humans 1. In the paradise where all is possible, one can indulge in euphoria feasting on a steak of no mass, free from the weight of the body. Now, people can say in bliss that heaven is not so far away from reality. Today, they are approaching the structure of the utopia they’ve dreamed of in the past, one step and the next, by savouring things that are not in their hands and communing with things that don’t exist.
However, where we have arrived today is not a space of dreadful loss nor that of blissful reward. Now, we are living in a world not utopian nor dystopian. Unlike the old deterministic division, it is far more slimy and viscous. Neo fluid, extracted by compulsive pressure of the world of tools (science, economy, and everything composed of numbers) to predict every future measured, ceaselessly leaks through the oozy helix of the network. Strangely enough, figure (number) is not the liminal condition of this mucus, but the existential condition. Now, we secrete the mucus in 0s and 1s.
The overflowing fresh secretion is not a corpse strangled with the linguistic coordination or algorithmic prediction. What oozes all over the network is not overwhelmed by the voice of the old authority. Rather, it annunciates the possibility of a new conception by flexibly evading, tricking, deceiving the old. The juice drenches all the pores of all bodies immersed in displays, like goo placidly filling in all crevices, or sticky vapour rising from beneath unhesitatingly. It is an alchemist’s semen which spills over the high-rise tower sturdily structured by probability and coordination, the saliva of Babel.
As the world is reduced to the resource of figures and economics, what used to sustain the world (religion, humanity, life, ethics, and other master narratives) slip and fall faster, and unpredictably (usually in forms of merchandises and statistics). Now everything seems upside down. The crust gives birth to meaning, image disappears into data, and we go wild over the meaningless murmurs of the icons of icons. Like the crucified Santa Claus displayed in a department store in Tokyo, like a decapitated Buddha head (Ong Bak) in a peaceful Scottish back yard, the carcass of dead meanings (signifiers) ceaselessly slips through the slimy network today, and floats everywhere as fragments of the network, as commodities. However, nobody seems sad anymore. Everyone lives in this new nature, like nothing ever happened.
The drifting signs of no gravity are not abrogated; freed from the chain of the exhaustive hierarchy of meanings and blasphemy, they incessantly aim for impulsive and contextless copulation. Usually, the beginning is a temptation of nonsense. And there, there always will be a viscous new life that flows through the dead representations’ specimens. The fragments roll over the viscosity, mating and breeding as they please. They bud a new forest in which we shall live. Here, utopia and dystopia are nothing but floating signs of retro(for humiliating the old idealists). So, it is all fine to put aside the old excessive fear and ecstasy about the future for a while. For it is time for the new humanity to prepare for the new era budding from the ruins of the fallen sign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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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y nature, the language of God and the language of man belong in different domains. For that reason, only selected mediums could have received divine revelations to enlighten people.
2 The last scene of Ghost in the Shell (1995) - Corinthians 13:11 “When I was a child, my speech, feelings, and thinking were all those of a child; now that I am a man, I have no more use for childish ways. What we see now is like a dim image in a mirror; then we shall see face-to f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