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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담요, 텐트폴대, 가변설치, 2014
풍향에 따른 길의 방위를 정하는 방법
글_김상진
이상철의 작업 속에서 오브젝트들은 그것들의 물리적 물성에 따라 철저히 이원화된 구조를 구축한다. 기본적으로 그것들은 강함과 약함이라는 일반적 이원 항으로부터 출발하여 구조적인 것과 비구조적인 것, 단단한 것과 부드러운 것, 영구적인 것과 임시적 것이라는 세부적 이원 항으로 분화한다. 이러한 이원 항의 구조는 작품의 내부뿐만이 아니라 외부(작품을 둘러싼 물리적 외부 공간)까지 적용되는데, 그러한 일관된 전략은 마침내 전시공간을 건축물 혹은 견고한 그리드들에 의해 배치된 콘크리트의 물성으로 작업 속에 개입시키며 그 외연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것은 종종 내부적 수축(설정)이 경계 외부를 끌어들이는 게 되는 방식이다.
그의 작품들이 표방하는 임시적이며 일시적인 설치와 구조 그리고 마테리얼리티들은 전략적으로 경계의 내부를 보다 가치 없고 유약하게 만듦으로써 굳건한 외부, 즉 건축으로서 공간, 을 그의 작품의 인력 속으로 끌어들인다. 결국 작품이 더 연약해지고 임시적일수록, 또한 그것이 일관된 전략일수록, 공간은 더욱 단단하고 항구적으로 위장되어지며 종내에는 작업의 대립 항으로써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작품의 구조 속에 겹쳐진 수 겹의 이원적 층위 중 첫 번째 구분짓기에 해당하며 작가가 언급하는 스스로의 가장 중요한 작업 관인 ‘마테리얼을 대하는 태도’와 직결되는 영역으로 읽혀져야 할 것이다.
“조각은 조각을 위한 어떤 구조물도 필요치 않다. 조각은 공간에 놓여지고 단위에 올라가 있을 때 예술작품으로서의 권위를 획득하게 되지만 동시에 다른 가능성들을 제한당하게 된다. 대부분 조각은 공간에서 단단하게 밀도를 차지하고 자신을 과시한다. 혹은 단단하게 구축되어 스스로의 기능성을 빛낸다. 예술작품과 관람자 사이의 근본적 위계의 거리만큼 조각 또한 위계에 의해 공간 보다 우선되어진다. 그러므로 이미 조각을 위한 구조물의 사라짐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하지만 나의 작업들은 대체로 공간에서 임시적이며, 기능적이지 않게(과시하지 않도록) 만들어진다. 이런 형식의 조각들은 공간 속에서 보다 건축적인 조각, 구조물로써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결국 조각의 확대된 측면들은 건축과 닿아있으며 그렇게 놓여있다…” - 작가의 작업노트
관습적 조각의 제도적 권위(최근의 작업일지라도 그것이 더 이상 영웅적 선택이 아니라면)가 제한시켜온 작품의 건축적 가능성 속에서 그의 ‘마테리얼을 대하는 태도’는 곧 그가 ‘예술을 대하는 윤리적 태도’ 의 대자적 지점에 위치한다. 그는 감상자가 제도의 시각적, 위계적 권위에 동조하여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하나의 일반적 함정으로 상정하고 감상 본연의 가능성( 건축적 가능성과 마찬가지로)을 확장해나가려고 했다고 말한다. 이 2가지 목적성은 모두 그가 언급한 ‘마테리얼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달성된다. 중립적이기를, 혹은 투명해지기를, 강요받아온 배경 건축의 일부로 이 겸손하고 임시적인 구조물들을 편입(혹은 환원)시키려는 전략은 암묵적으로 행사되어온 제도적 혹은 일방적 계몽을 통한 위계의 확립을 유예시킨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대립항으로 등장한 공간(건축)은 마치 뿌리를 드러난 제도의 현신처럼 거대하고 조직적이며 영구적으로 느껴지게 된다.
이러한 접근법은 텍스트를 둘러싼 내러티브들의 제거를 주장했던 롤랑바르트의 ‘저자의 죽음’ 과 일면 비슷한 맥락으로 흘러갈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모든 저자를 살해해버림으로서(상징적으로라도) 새로운 저자의 자리에 등극할 수 밖에 없었던 롤랑바르트의 뒤를 따르지 않는다. 이것을 그는 위계에 빠지는 함정이 사라진 예술을 만들었다고 착각할 수 있는 함정으로 다시 상정한다. 그러므로 사실 그의 전략은 ‘진공상태의 장렬한 투쟁’ 보다는 ‘주인공에게 무심하기’ 에 가깝다.
여기, 그의 규칙 속에서 마테리얼들에 관한 레퍼런스는 제거되지 않지만, 침묵에 부쳐진다. 오직 변증법적 구조의 반복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들은 이렇게 펼쳐진다. 연약한 것과 단단한 것 - 임시적인 작품과 건축(제도)의 견고함 - 건축적 한계와 자연의 절대성. 그리고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이것들이 모두 인간적인 것들과 인간적이지 않은 것들의 상대성의 경계에서 서로를 존재하게 만드는 방식이 된다는 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