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간다  

(2017년 백현주 작가와의 2인전  Ⅰ, Ⅱ, Ⅲ 에 출품된 공동작업 Ⅰ, Ⅱ, Ⅲ 중)




사랑은 상상 속의 오래된(얼마나 오래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거대한 동물이다. 또한 그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궤변의 괴물이며 근본 없는 색인 속에서나 찾을 있는 그런 생물이다. 나는 호로 자석이 (사실 그는 바다 건너에서 입양되었기 때문이다) 강제한 어떤 황홀감을 기억하며 그보다 훨씬 오래전 언제인가 온몸에서 뭉클뭉클하게 느껴지던 어떤 것들을 그의 입안으로 쉬이 털어 넣어 버린 또한 기억한다.

 

아니. 기억해보니 어린 날의 나는 생각보다 제법 저항했던 것이다. 그것은 생각 보다 흐느적거리며 쉽게 열기에 휩싸이다 분노에 가득 발기해버릴 수도 있는, 본디 이름을 가질 없는 그러한 벌거벗은 것들이었다. 누군가가 (아마도 사랑 노래들을 통해 )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을 나는 일단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창고에 황급히 넣어 놓고는 지도를 잃어버렸다. 그러니까 오직 내가 기억할 있는 것은 창고 문을 잠그며 느꼈던 짧은 비극적 안타까움, 그런 찰나의 기억 정도뿐인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는 내가 성장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 빼앗길 것이 많지 않다.

 

사실 예전부터 동물은 기호의 생태계 속에서 이누크 족의 어떤 것을 잡아먹고 지금은 없어진 수많은 미개인의 언어 속에서 어떤 것을 잡아먹고 오래전에는 강간과 살인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고대인들의 어떤 것을 잡아먹었다. 나는 영생의 동물을 소멸시킬 방법을 찾고 있다. 아니 영생이란 존재 하지 않는다. 태어남이 있었으므로 언젠가 죽음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변증법은 그렇게 말했다. 단지 우리는 메두사가 언제 태어났는지 기억하지 못하므로 돌덩이처럼 굳어서 그녀를 바라본다. 괴물의 목을 베기 위한 청동거울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음으로 영웅들의 사위도 허공을 가를 것이다. 그러므로 페르세우스의 이야기는 허황된 거짓말이다. 이야기된 것은 영원한 침묵으로만 소멸시킬 있다. 적어도 변증법은 그렇게 말했다

 

괴물은 오늘도 광장에서 셰익스피어의 수트를 입고 어둠 속에서 사드의 막대기를 휘두른다. 그의 망토에서 종종 삐져나오는 것들은 증오와 질투와 폭력이라고 불리우며 사람들은 망토의 끝자락에서 그것들을 가위질하는 데에 여념이 없다. 게다가 우리는 솜씨 좋은 재단사처럼 그의 어깨부터 발끝까지 치수를 재어 화성¹으로 가는 우주복을 만들었는데 그는 핵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옷을 입고 이곳을 떠날 것이다. 그러니 이제 침묵으로 그를 멸종시킬 있을 거란 이야기도 희미한 서사시가 되었다.

 

그러니까 사실 실존하는 거대한 동물은 기호계의 약삭빠른 사업가로서 모두가 그런 것들을 넣어둔 창고들을(지도 없는) 전당품으로 받는 가혹한 전당포의 노파와 같다. 모두가 잃어버린 것들을 담보하는 자는 아무도 모르게 군림하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므로)이며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샤먼이다. 그러므로 내가 잃어버린 지도를 복기하는 것은 결국 불가능한 일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래, 영웅들의 영정을 뒤로하고 아련한 억울함과 무모함의 혼돈 속에서 도끼를 라스꼴리니꼬프², 어리석은 자가 앞으로 걸어간다.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의 소설 붉은 별’ 에서 존재하는 화성의 초현대과학적 유토피아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 의 주인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