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Visibility_the history of entropy

printer, water tank, aluminum, mixed media, 166*50*80cm, 2013



원본 없는 사본들    

(2013 금호미술관 개인전 chicken or egg 중 작가 스테이트먼트)

 

원본 없는 사본들 현재의 디지털 시대에 어쩌면 더이상 어떤 원본들은 사본 보다 가치 있는 물건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날로그 시대의 복제행위에 수반되던 손실적 혹은 변형적 특징은 오랜 기간 사본에 대하여 원본이 가지게 되는 가치적 우월성을 확정하는 근거가 되어왔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들어와 원본과 사본 간의 이러한 가치의 위계는 의심받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은 원본과 동일한 사본 제작능력의 등장에 기인한다고 있을 것이다. 분명 어떤 디지털 자료들은 태생부터 디지털에서 태어나 스스로의 정보의 유실 없는 복제를 반복한다. 이것은 수많은 원본의 존재 가능성과 원본 없는 사본의 존재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이러한 존재 가능성은 분명 과거로부터 끊임없이 이어져 왔을 것이다. 일정한 품질로 대량생산되는 가공품들과 발터 벤야민이 기계적 재생산시대의 예술(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mechanical reproduction)에서 언급한 필름의 원본해체성 또한 그것이 도드라지기 시작할 무렵의 가능성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디지털 복제 기술에서 원본의 아우라(협의적으로권리’) 제도적(프로그램적) 규제에 의해서만 지켜질 있는 특성을 보여준다. , 적어도 디지털 세계 안에서는 열화 없는 동일한 원본의 무한한 생산이 가능한 것이다 (하드디스크에 빈공간이 넉넉하다면). 것은 아날로그적 복제행위(대량생산시대의 상품들) 같은 뿌리를 대중의 소유욕에서 출발하겠지만 원본의 개념이 사라진 사본들(혹은 원본들) 소유욕이 그리워한 대상을 달리하게 된다

 

분명 여전히 오늘의 현실은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의 세계 , 물리적, 화학적 영향의 아래에 있는 세계로 존재하며 마법 같은 모순 혹은 혁명 (원본과 사본의 경계가 사라지는) 벌어지고 있는 디지털세계도 결국 현실의 일부에 편입돼 있다 (당신이 버리고 싶은 디지털 세계가 있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하드디스크를 파쇄하라). 그것은 디지털 세계가 그저 아날로그적 프레임 위에 그려진 인간의 꿈이기 때문인 걸까? 하지만 수많은 영상과 사진, 소리들은 디지털 세계를 떠돌고 있으며 아날로그적 현실의 일부로 아교처럼 스며들어와 현실보다 현실 같은 혹은 이미 현실로서 곳곳에 배치되고 있다.

 

누실 되는 법을 잃어버린 그것들은 언어(기호체계) 만들어낸 등가 시스템의 유령과도 같다. 그리고 유령들은 현실보다 현실 같은 재현을 위한 다른 언어로 규격화 된다. 결국 그것들을 구성하는 것은 모두 언어이다. (기호라는 맥락에서) 그리운 가족의 사진들도, 현란한 성의 환희를 노래하는 동영상도 이진법의 숫자들의 연주 위에 그려진다. 달라진 점은 정보가 누실 되는 법을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하지만 언어는 본디 등가적 기호체계로 가정되어 있으며 언어가 아닌 원본에서 언어로의 일차적 누실을 제외하고는 언어 내에서 누실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실제로는 수많은 오류와 누실이 발생하지만). 그러므로 사실 디지털이라는 것은 보다 고도화된 현실의 언어적(기호 체계적) 고착 현상이라고도 있을 것이다. 파롤이 존재하지 않는 랑그 만으로서의 기계어가 만들어 내는 재현은 사람들에게서 객관성에 관해 맹목적 믿음을 얻고 있는 듯하다. 혹은 미디엄으로서의 기계어는 순간순간 투명해지며 존재를 감춘다. 투명함은 시대의 가장 확고한 그리고 보편화한 종교와 세계관에 주어지는 특권이다

 

실제에 가깝거나 실제보다 나은 소리를 얻기 위한 프리미엄 오디오 마켓에서의 경쟁은 이제는 조금 구닥다리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20세기 초중반에 이미 그것들이 성취되었으므로). 망막의 능력을 뛰어넘기 위한 도발적인레티나 디스플레이경쟁은 보다 최신의 움직임일 것이다. 픽셀이 많아질수록 시스템은 현실에서 투명해진다. 3D 프린터가 가져올 혁명에 들떠있는 사람들은 머지않아 원본에서 추출되지 않은 콩팥이나 간을 쉽게 얻을 있게 있을 것이다. 유령들로부터 현실을 끌어내려는 끝없는 움직임들은 시뮬레이션 현상을 더욱 강화해준다. 인간의 인지체계가 필요로 하는 인지 가능 범위의 신호들만이 추출된 , 원본은 점점 유용성(아우라) 잃어가고 추출된 신호와 기호들은 필요범위 안에서 재조합 조립된다. 언젠가 유기체와 동일한 시각 신호를 보낼 있는 전자 망막이 개발된다면 적어도 사람들은 현실을 대체하기 위해 거대한 120인치의 UHD 티브이를 낑낑대며 옮길 필요는 없어질 것이다. 결국은 문제는 기호의 재현이라는 유령에 있는 것이다.

 

아마 바보 같은 이야기라고 여겨지겠지만, 언제일지 모르는 그러나 가까운 미래에, 생물학적 원본과 사본을 구별할 방법은 제도적 규제 장치 밖에 남지 않게 지도 모른다. 물론 많은 공상과학 소설들이 떠들어댄 우스운 예언처럼 들리겠지만, 기억되어져야 것은 이미 우리는 원본 없는 사본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